7/18(일) 가난한 자의 기쁨_이사야 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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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12회 작성일 2021.06.28본문
* 금일 영상이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가난한 자의 기쁨>
사 29: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초창기 한국선교사님이셨던 민로아 목사님은 조선 땅에서 두 아이와 아내가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찬양을 지어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노래를 “예수님은 우리 기쁨 우리 생명 우리 평화 우리 영광!”이라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같은 고통속에서도 이같은 기쁨의 고백을 하게 되었을까요?
1793년 인도의 가장 더러운 도시 켈커타로 부임한 윌리엄케리 선교사님은 이듬해에 아들이 죽었고 아내가 14년간이나 심한 정신병을 앓다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벵갈어, 산스크리트어, 마라디어로 성경을 완역한 것을 비롯해 40개 방언으로 성경 번역본을 냈고, 초중고대학을 설립하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선교의 아버지라는 추앙을 받는 그는 자기의 비문에 이와같은 고백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사악하고 가난하고 정처없는 벌래가 당신의 친절한 팔에 기대어 눕습니다”.
그는 그 같은 고통과 그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겸손의 고백을 하게 되었을까요?
“너희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라” 는 소명에 순종하여 55년동안 힌두교 신전에 창기로 팔려가는 어린아이 900명을 구출하는 사역을 했던 에이미 카마이클은 그녀의 사역 마지막 20년간은 중한 질병에 시달리면서 사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와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고통을 다 겪으신 주님! 저에게 허락하신 고통이 심히 괴롭습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왜?"라고 묻기보다는 "무슨 목적으로?"를 묻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고통이 제 심령을 아프게 하고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이 내 속에 숨겨진 죄들을 튀어나오게 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온전히 용서받고 수술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불어오는 바람이 멈추기 전에 당신의 고요 속에 머무르는 지혜를 주옵소서.
주님! 고통이 사라지기 전에 노래 부르는 것을 가르치소서.
오 사랑의 주님! 나로 하여금 증명할 기회를 갖게 하소서.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승리는 항상 당신의 것입니다“.
그녀는 그같은 긴 투병생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같은 승리의 고백을 하게 되었을까요?
민로아, 윌리엄 케리, 에이미 카마이클선교사님이 그와같은 큰 고통 속에서도 이와같은 기쁨과 겸손과 승리를 고백하게 만든 것은 그들의 천성적인 선함이나 인내심이나 의지력이 아니라 그들이 고통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즐거움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셔야 하는 하나님은 동시에 가장 낮은 겸손과 가난의 골짜기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사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낮은 곳에 임하는 기쁨 때문이었습니다.
원죄는 스스로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올라간 곳에는 사단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를 돈 권력 명예 쾌락을 향해 오르고자 하는 모든 원죄의 굴레에서 자유케 할 수 있는 것은 가난함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구해야 할 기도는 더 낮아지게 해달라는 부탁입니다.
<가난한 자의 기쁨>
사 29:19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초창기 한국선교사님이셨던 민로아 목사님은 조선 땅에서 두 아이와 아내가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찬양을 지어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노래를 “예수님은 우리 기쁨 우리 생명 우리 평화 우리 영광!”이라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같은 고통속에서도 이같은 기쁨의 고백을 하게 되었을까요?
1793년 인도의 가장 더러운 도시 켈커타로 부임한 윌리엄케리 선교사님은 이듬해에 아들이 죽었고 아내가 14년간이나 심한 정신병을 앓다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벵갈어, 산스크리트어, 마라디어로 성경을 완역한 것을 비롯해 40개 방언으로 성경 번역본을 냈고, 초중고대학을 설립하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선교의 아버지라는 추앙을 받는 그는 자기의 비문에 이와같은 고백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사악하고 가난하고 정처없는 벌래가 당신의 친절한 팔에 기대어 눕습니다”.
그는 그 같은 고통과 그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겸손의 고백을 하게 되었을까요?
“너희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라” 는 소명에 순종하여 55년동안 힌두교 신전에 창기로 팔려가는 어린아이 900명을 구출하는 사역을 했던 에이미 카마이클은 그녀의 사역 마지막 20년간은 중한 질병에 시달리면서 사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와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고통을 다 겪으신 주님! 저에게 허락하신 고통이 심히 괴롭습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왜?"라고 묻기보다는 "무슨 목적으로?"를 묻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고통이 제 심령을 아프게 하고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이 내 속에 숨겨진 죄들을 튀어나오게 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온전히 용서받고 수술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불어오는 바람이 멈추기 전에 당신의 고요 속에 머무르는 지혜를 주옵소서.
주님! 고통이 사라지기 전에 노래 부르는 것을 가르치소서.
오 사랑의 주님! 나로 하여금 증명할 기회를 갖게 하소서.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승리는 항상 당신의 것입니다“.
그녀는 그같은 긴 투병생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같은 승리의 고백을 하게 되었을까요?
민로아, 윌리엄 케리, 에이미 카마이클선교사님이 그와같은 큰 고통 속에서도 이와같은 기쁨과 겸손과 승리를 고백하게 만든 것은 그들의 천성적인 선함이나 인내심이나 의지력이 아니라 그들이 고통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즐거움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셔야 하는 하나님은 동시에 가장 낮은 겸손과 가난의 골짜기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사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낮은 곳에 임하는 기쁨 때문이었습니다.
원죄는 스스로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올라간 곳에는 사단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를 돈 권력 명예 쾌락을 향해 오르고자 하는 모든 원죄의 굴레에서 자유케 할 수 있는 것은 가난함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구해야 할 기도는 더 낮아지게 해달라는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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