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일) 고난을 허용하시는 여섯 가지 이유_사도행전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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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79회 작성일 2021.06.29본문
* 금일 영상이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용하시는 여섯가지 이유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많은 신자들은 예수를 잘 믿으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든 고난과 역경은 사라지고 평화와 행복만이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신자의 삶에서 모든 고난을 막아주셔야 한다고 우깁니다.
그리고 그런 기대가 어긋나게 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못한 생각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고난이 있을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고난을 만든 이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죄임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그 같은 고난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선용하실 뿐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환난을 제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허용하시는 데에는 6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성도의 고난은 그가 주님께 속한 자라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사탄과 세상을 등지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한 자들입니다. 이 때문에 당연히 세상과 사탄은 공격하게 되어 있고, 그래서 고난은 주의 것임을 확증하는 영광스러운 식별부호가 됩니다.
둘째 성도의 고난은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이기 때문입니다. 징계는 징벌과는 다릅니다. 징벌은 잘못에 대한 사랑 없는 처벌이지만 징계는 잘못에 대한 사랑의 회초리입니다. 아버지의 징계는 철없는 자녀인 우리가 성숙한 자녀로 자라갈수 있게 해주는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셋째 성도의 고난은 우리를 연단의 최선의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연단(refine)이란 좋은 것을 다시 더 좋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고난이라는 연단을 거칠수록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던 죄의 불순물은 급격히 빠져 나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갈수록 강해지고 온전해 지고 정결하게 됩니다.
넷째 성도의 고난은 영안의 세정제요 진리의 접착제이기 때문입니다. 눈물은 우리의 영안을 깨끗하게 닦고 잘 안보이던 말씀을 환히 보게 만드는 세정제 역할을 합니다. 고통은 말씀을 다시 붙잡고 놓지 않게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다섯째 성도의 고난은 타인을 동정하고 위로하게 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겪어 본 사람만이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용기, 인내, 자기희생,동정심 등 가장 고귀한 인격들은 이 세상에 고통이 있기 때문에 발견되어 지는 선물들입니다.
여섯째 성도의 고난은 장차 올 두려운 심판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셔서 비록 신자라 하더라도 공의를 굽혀 재판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신자에게 더 많은 고난을 허용하시고 더 세밀하게 징계하시사 궁극적인 심판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하나님은 죄와 슬픔 고통과 질병 등의 고난을 한꺼번에 다 몰아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고난에 관한 이상의 모든 설명들도 신앙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바뀌지 않는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이 땅에서 우리를 편안하게 보호하셨다가 천국에 데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관심사는 온통 우리를 예수 닮은 온전한 자녀와, 서로 사랑하는 천국가족으로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관심사가 우리의 목표가 될 때 인생에 찾아오는 수많은 고난에 대한 해답이 찾아지며, 고난으로 인해 더 높은 찬양을 부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용하시는 여섯가지 이유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많은 신자들은 예수를 잘 믿으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든 고난과 역경은 사라지고 평화와 행복만이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신자의 삶에서 모든 고난을 막아주셔야 한다고 우깁니다.
그리고 그런 기대가 어긋나게 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못한 생각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고난이 있을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고난을 만든 이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죄임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그 같은 고난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선용하실 뿐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환난을 제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허용하시는 데에는 6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성도의 고난은 그가 주님께 속한 자라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사탄과 세상을 등지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한 자들입니다. 이 때문에 당연히 세상과 사탄은 공격하게 되어 있고, 그래서 고난은 주의 것임을 확증하는 영광스러운 식별부호가 됩니다.
둘째 성도의 고난은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이기 때문입니다. 징계는 징벌과는 다릅니다. 징벌은 잘못에 대한 사랑 없는 처벌이지만 징계는 잘못에 대한 사랑의 회초리입니다. 아버지의 징계는 철없는 자녀인 우리가 성숙한 자녀로 자라갈수 있게 해주는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셋째 성도의 고난은 우리를 연단의 최선의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연단(refine)이란 좋은 것을 다시 더 좋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고난이라는 연단을 거칠수록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던 죄의 불순물은 급격히 빠져 나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갈수록 강해지고 온전해 지고 정결하게 됩니다.
넷째 성도의 고난은 영안의 세정제요 진리의 접착제이기 때문입니다. 눈물은 우리의 영안을 깨끗하게 닦고 잘 안보이던 말씀을 환히 보게 만드는 세정제 역할을 합니다. 고통은 말씀을 다시 붙잡고 놓지 않게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다섯째 성도의 고난은 타인을 동정하고 위로하게 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겪어 본 사람만이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용기, 인내, 자기희생,동정심 등 가장 고귀한 인격들은 이 세상에 고통이 있기 때문에 발견되어 지는 선물들입니다.
여섯째 성도의 고난은 장차 올 두려운 심판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셔서 비록 신자라 하더라도 공의를 굽혀 재판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신자에게 더 많은 고난을 허용하시고 더 세밀하게 징계하시사 궁극적인 심판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하나님은 죄와 슬픔 고통과 질병 등의 고난을 한꺼번에 다 몰아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고난에 관한 이상의 모든 설명들도 신앙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바뀌지 않는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이 땅에서 우리를 편안하게 보호하셨다가 천국에 데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관심사는 온통 우리를 예수 닮은 온전한 자녀와, 서로 사랑하는 천국가족으로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관심사가 우리의 목표가 될 때 인생에 찾아오는 수많은 고난에 대한 해답이 찾아지며, 고난으로 인해 더 높은 찬양을 부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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